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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IGHT WATCH Exhibition view 2012

The Age of Darkness Seen through a Digital Mirror

Young June Lee <critic>

As night falls, darkness creeps in. Along with the darkness comes the monster. But the monster does not come from far away. It comes from within. You, the human is the home of the monster. The monster never stops, it never sleeps. If you fail to tame the monster, it will destroy you from within. Why fear the monster? It brings chaos. Like a naughty child, the monster unsettles what has been established and shakes what has been stable. The monster is not easy to detect as it hides deep in the darkness.

So comes the camera, the human tool to control light. The little machine that freezes time is hoped to help to tame the monster. The language of the camera was thought to be light. But it turned out that the language of the camera was darkness. Inside the camera was a circuit to channel the flow of darkness. The origin of the word camera has come from ‘camera obscura’, which means darkroom. So, it is very natural that the camera finds itself comfortable in the midst of the darkness of the night.

However, the camera must not be left free in the dark. In modern period the camera itself has turned out to be a monster. Indeed, in the society of abundant technologically reproduced images, the camera has always been a monster. Friedrich Nitzsche has already warned, “beware that, when fighting monsters, you yourself do not become a monster. For when you gaze long into the abyss, the abyss gazes also into you.” Fighting the monster of the darkness, the camera has become a monster. In the past, the darkness lay in ignorance and poverty. These days, the darkness sits in the midst of light. For too bright light blinds the eye.

So the camera should be put under control. So comes the photographer. Shinwook Kim intervenes in a scene otherwise chaotic in a monstrous darkness. His camera stares in the darkness. Tree branches and trunks shining bright are poised to stand on guard to the hell of darkness. But this light is artificial. What looks to be very bright is indeed the play of exposure time and aperture. This amount of light would have been ignorable in the bright sunshine of the day. In some photographs, the darkness itself is also artificial. It is tainted with the light of the city, with multiple colors mixed in it. Complex light sources such as street lamps, signboards and interior lights create darkness that is so biased to a certain color that it can no longer be called darkness. These days, there is no pure darkness. What has been polluted is not just the air but the darkness. So the photographer has set out to pursue the pure darkness but ends up finding himself caught up in the mixture of light and darkness.

What ever happened to Rembrandt, the painter of light and darkness? His famous painting <Night Watch, or The Militia Company of Captain Frans Banning Cocq> (1642) has long been thought to be a depiction of a night scene. But when the painting was cleaned, it was discovered to represent a broad day. Indeed, it was a party of musketeers stepping from a gloomy courtyard into the blinding sunlight. Dark misunderstanding has been surrounding this painting for so long time. Although he was a popular painter and a rich man, he lived in extravagance and his life ended in a misery. Finally he was buried as a poor man in an unknown grave. After twenty years since his death, his remains were taken away and destroyed.

What would happen to the photographer of darkness? People talk about visual language. The photographer of darkness talks about the language of darkness. People have long thought that the contents of a photograph is what it portrays in a visual language. They have thought what can be perceived and deciphered in a narrative form is its contents. Even theoreticians and critics try to read what a photograph tells. From this moment, the contents of photography should be defined as the struggle between light and darkness. The history of this struggle is entwined along a complex line of technology, art, humanities and social practices. The age of darkness has succumbed to the age of light since the invention of light bulb in 1890 by Thomas Edison. However, darkness is still roaming large in the twenty first century, the age of LED lights. So comes Shinwook Kim, not just to tame the monster of darkness but also the monster of light.

The light in his photographs is a precious entity, as it is prepared and realized in so delicate a manner that it can never be mechanically reproduced. So Walter Benjamin had to wait until Shinwook Kim’s works were unveiled before he hastily concluded his famous essay, “The work of art in its age of technical reproducibility.” He wrote that the aura of traditional work of art was destroyed along with the emergence of the technical means of reproducing images. What he did not notice was that the subtle arrangement of technical means to make an image could not be reproduced. The circumstance in which a technical means is employed to produce an image is way more complex and subtler than Benjamin had imagined. There is no technical reproduction that produces an endless series of same images. There are only micro-scale differences that can only be detected using X rays, UV and infrared. Thus one must be cautious when talking about the all encompassing term of technical reproducibility. So is Shinwook Kim. His photographs were produced in careful footsteps that lead all the way into the depth of darkness. The viewer of his works should also be careful. One should not miss delicate details Shinwook Kim created with the help of camera devices.

So the photographer of the twenty first century is given a somewhat different task than those in the early twentieth century. He would put the technical means of image production on a different ontological basis. He listens to the sound of darkness. He listens to the narrative of the objective world of which nobody holds a total control. For so long, humans have degraded it as meaningless, ominous, murky and so on. Shinwook Kim revives the virtue of darkness. Can’t we see the contour of the things that are not visible under bright light? The virtue of this precious jewel of being that is so quiet and free of noise has long been forgotten. In the darkness we can sleep. That is when the siren inside us begins to work. We can find peace in it. Shinwook Kim’s photographs are historical in that he discovers the value of darkness anew. In his photographs a sleepwalker is happy. He knows his destination and every path he takes. We will just follow.

디지털 거울을 통해 본 암흑의 시대

이영준 (기계비평가)

밤 이 되면 어둠이 찾아오고, 어둠과 함께 괴물이 온다. 그러나 괴물은 멀리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부에서 온다. 당신, 인간이 괴물의 집인 것이다. 괴물은 멈추지 않으며 잠들지 않는다. 괴물을 길들이지 못한다면 괴물은 내면에서 당신을 파괴할 것이다. 왜 괴물을 두려워할까? 그것은 혼란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장난꾸러기 아이처럼 괴물은 자리잡은 것을 불안하게 하고, 안정된 것을 흔든다. 괴물은 어둠 깊숙이 숨어 있어 쉽게 발견할 수 없다.

따라서 카메라는 빛을 통제하는 인간의 도구이다. 시간을 얼리는 작은 기계가 괴물을 길들이는 데 필요하다. 카메라의 언어가 빛이라고 여겨졌지만, 카메라의 언어는 어둠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카메라 내부에는 어둠의 흐름을 연결하는 회로가 있다. 카메라라는 단어의 기원은 암실을 의미하는 ‘camera obscura’에서 왔다. 따라서 카메라가 밤의 어둠 한가운데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카메라를 어둠 속에 방치해서는 안 된다. 근대에 카메라 자체가 괴물로 밝혀졌다. 사실 기술적으로 재현된 풍부한 이미지의 사회에서 카메라는 항상 괴물이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미 “괴물과 싸울 때 너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심연을 오래 바라보면, 심연 또한 너를 바라본다”고 경고하였다. 어둠의 괴물과 싸우다 보면 카메라가 괴물이 된다. 과거에는 어둠이 무지와 빈곤 속에 있었다. 요즘에는 빛의 한가운데에 어둠이 자리잡고 있다. 너무 밝은 빛은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카메라는 통제 하에 있어야 하고 따라서 사진가가 있다. 김신욱은 괴물 같은 어둠 속에서 혼란스런 장면에 개입한다. 그의 카메라는 어둠속에서 응시한다. 밝게 빛나는 나뭇가지와 줄기는 어둠의 지옥에 서서 지키고 있다. 그러나 이 빛은 인위적이다. 매우 밝아 보이는 것은 실제로는 노출 시간과 조리개의 play 이다. 이 빛의 양은 그날의 밝은 햇살에서 무시될 수 있다. 일부 사진에서는 어둠 그 자체가 인공적이다. 그것은 여러 가지 색이 섞인 도시의 빛으로 오염되었다. 가로등, 간판 및 실내 조명과 같은 복잡한 빛은 어둠이라고 할 수 없는 특정 색상에 치우친 어둠을 만든다. 요즘 순수한 어둠은 없다. 오염된 것은 단지 공기가 아니라 어둠이다. 그래서 사진가는 순수한 어둠을 추구하기 시작했지만 빛과 어둠의 뒤섞임에 휩쓸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밤과 어둠의 화가 렘브란트(Rembrandt)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그의 유명한 작품 (1642)는 오랫동안 밤 풍경을 묘사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페인트를 걷어내보니, 그것은 낮을 표현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것은 어두운 안뜰에서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곳으로 나아가는 머스킷 총병들의 파티였다. 어두운 오해가 오랫동안 이 그림을 둘러싸왔다. 그는 인기 있는 화가이자 부자였지만, 사치스러웠고 그의 인생은 비참하게 끝났다. 마침내 그는 이름없는 무덤에 가난한 사람으로 묻혔다. 죽은 지 20년이 지난 지금, 그는 사라졌고 파괴되었다.

어둠의 사진가는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시각적 언어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둠의 사진가는 어둠의 언어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사진의 내용이 시각적 언어로 묘사된 것으로 생각해왔다. 내러티브 방식으로 인식되고 해석될 수 있는 것이 그 내용이라고 생각해왔다. 이론가와 비평가조차도 사진이 말하는 것을 읽으려고 한다. 이 순간부터 사진의 내용은 빛과 어둠의 투쟁으로 정의되어야 한다. 이 투쟁의 역사는 기술, 예술, 인문학 및 사회적 관행의 복잡한 라인을 따라 얽혀있다. 어둠의 시대는 토마스 에디슨(Thomas Edison)에 의해 1890년에 전구가 발명된 이래로 빛의 시대에 굴복하였다. 그러나 어둠은 LED 조명의 시대인 21세기에 여전히 배회하고 있다. 그래서 김신욱은 어둠의 괴물뿐 아니라 빛의 괴물도 길들인다.

그의 사진 속의 빛은 기계적으로는 재현할 수 없는 섬세한 방식으로 준비되고 실현되기 때문에 소중한 실재물이다. 그래서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이라는 유명한 글로 속단하기 전에 김신욱의 작품이 공개될 때까지 기다렸었어야 했다. 그는 전통적인 예술 작품의 아우라가 이미지 재현의 기술적 수단의 출현과 함께 파괴되었다고 했다. 그가 알아채지 못한 것은 이미지를 만드는 기술적 수단의 미묘한 배치는 재현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기술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상황은 벤야민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미묘하다. 끝없는 일련의 이미지(series of same images)를 만드는 기술적 재현은 없다. X선, 자외선 및 적외선을 사용해야만 탐지할 수 있는 미세한 차이들이 있다. 따라서 기술 재현성이라는 포괄적인 용어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주의해야 한다. 김신욱도 그렇다. 그의 사진은 신중한 발자국으로 제작되어 어둠 깊숙한 곳으로 인도한다. 그의 작품을 보는 사람 또한 조심해야 한다. 카메라 장치 덕분에 김신욱이 연출한 세부 사항들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21세기의 사진가에게는 20세기 초기의 사진가와는 다소 다른 임무가 주어진다. 그는 이미지 생성의 기술적 수단을 다른 존재론적 근거에 둔다. 그는 어둠의 소리를 듣는다. 그는 누구도 완전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객관적 세계의 이야기를 듣는다. 오랫동안 인간은 그것을 무의미하고 불길하며 어둡다고/흐리다고 비하해왔다. 김신욱은 어둠의 미덕을 되살린다. 밝은 빛 아래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의 윤곽을 볼 수는 없을까? 조용하고 소음 없는 이 귀중한 보석의 미덕은 오랫동안 잊혀져 왔다. 어둠 속에서 우리는 잠들 수 있다. 그 때 우리 내부의 사이렌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그것에서 평화를 찾을 수 있다. 김신욱의 사진은 어둠의 가치를 다시금 발견한다는 점에서 역사적이다. 그의 사진에서 몽유병자는 행복하다. 그는 목적지와 모든 경로를 알고 있고 우리는 그저 따라갈 뿐이다.